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East Mee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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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사랑을 말하다.

Poetic Mood
By Yunessi

꽃만 피고 지는게 아니다. 사랑도 피고 진다. 보름달처럼 차오르고 그믐달처럼 기운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었다면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 키스의 달콤한 추억과 설렘은 갈비뼈가 시린 저녁나절에 읖조리는 시가 되고 노랫말이 된다. 지는 것은 슬프다. 떨어지는 꽃 잎도 낙엽도 황홀한 빛을 뿜으며 꼬리를 감추는 낙조도 애잔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찬란하게 불태우고 떠나는 것들은 제각기 약속의 말들을 주고 받는다. 꽃은 꽃씨로 봄을 기약하고 낙조는 다시 떠 오를 태양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 섰을 뿐이다. 낙엽은 겨울 나무들의 발 등을 제 온기로 덮으며 푸른 잎을 피울 시간을 기다린다. 사랑이 계절따라 피고 지고 열매맺는 것처럼.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오늘은 사랑에 대해 말하련다. 지는 것이 피어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처음보다 더 깊어지는 마지막을 위하여.
사랑이 처음 가슴에 작은 씨앗으로 떨어지면 새 각시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단다. 뭉게 구름 속을 헤메며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꿈꾸게 되지. 봄 날의 정원처럼 따스하고 정겹단다. 빛나는 한 폭의 수채화에 그리움의 시를 새기게 되지. 그 작은 씨앗이 꽃 필 즈음 사랑이란 이름의 누군가를 만나게 될테지. 그 만남은 너무 달콤해서 감당하기 힘들거야. 뜨거운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이스팔트처럼 엉겨붙고 눈까지 멀게 될지도 몰라. 한 번 삼키면 독약 바른 초콜릿처럼 온 전신이 마비되기도 하지. 사랑은 집착이 되고 올가미가 되기도 한단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한 여름밤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움은 없단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바람이 몰아쳐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단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불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포근했던 유년의 고향으로 달아나고 싶어 질거야. 그래도 참아야 돼. 사랑이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고 상처를 덮어주는 반창고란 걸 네 스스로 알기 까진.
참고 견디면 사랑은 기적이 된단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담고 있지. 사랑이 없었다면 죽어 없어 질 목숨이 어떻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겠니? 내 속에서 작은 발 길로 네 존재를 알리는 순간부터 사랑은 생명이고 삶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됐단다. 아무리 큰 희생과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이 내 품에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었다. 살아있는 용기고 희망이었어. 정붙여 사는 모든 것이 사랑이었어. 생의 고비마다 애썼던 몸짓 손짓 발자취 속에 사랑의 말들을 적어 놓았단다. 계절따라 절망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사랑의 힘을 믿어 보렴.
세상의 모든 딸아 아들아. 이젠 말할 수 있단다. 사랑으로 고통받고 사랑 때문에 넘어졌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피고 지고 스쳐 간 크고 작은 사랑이 모여 내 삶은 강물처럼 흘러왔다고. 사랑이 아늑한 강물되어 생의 밑바닥까지 따스하게 덮혀 주었다고.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지금 사랑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라. 사랑없이 사는 백만년 보다 사랑하며 사는 하루가 더 아름답다.
떠난 사랑 못다한 사랑 잊혀진 사랑 상처 받은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아라. 지는 것은 다시 핀다. 사랑의 꽃씨를 품은 사람에겐 사랑은 영원히 지지않는 꽃이다. 사랑의 꽃은 꺾지 않으면 다시 핀다.

중앙일보 0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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