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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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 East Meet West

물레에 실을 잣듯

 

 

 

 

 

 

 


'Canyons of Light I'
By: John Kirks


한(恨)이 많으면 죽을 때 눈을 못 감는다고 한다. 한은 이루고 싶은 것, 꼭 하고 싶은 것을 끝내 이루지 못한 것들이 쌓인 응어리다. 응어리는 근육 또는 액체 따위가 차지게 뭉친 덩어리다.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만이나 풀지 못한 감정들이 모이면 응어리가 돼 한으로 맺힌다.
한국 사람은 한이 많다고 한다. 정이 깊어 정 때문에 한이 맺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민족문화를 한의 문화라고 최초로 말한 인물은 야나기 무네요시 (1889∼1961)다. 제법 한국 도자기에 심취해 나름대로 한국 문화를 연구했는데 한국 문화가 우울(Mode)을 주축으로 한 한의 정서라고 정리했다.
이 발표는 한국인의 패기와 긍지를 말살 시키려는 일본제국주의 정책과 맞아 떨어져 '한의 문화'가 우리 문화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됐다. 우리나라 문화 예술에는 한을 정조로 삼는 것이 적지 않지만 한국 문화 예술의 위대함은 한을 극복하는 재치 있는 해학과 웃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장화홍련전도 비극이 주조로 이루면서도 풍부한 해학과 신명을 도입해 한과 슬픔을 극복하고 있다.
아리랑의 사설은 별리의 아픔을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났네'라는 해학적인 표현을 삽입하여 이별의 슬픔을 차단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 해학의 미를 가해 웃음 으로 슬픔을 날려 보내는데, 해학은 슬픔을 분해 내지 차단하며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양반과 서민의 갈등을 풍자한 하회탈놀이나 흥부전, 배비장전 등에도 포복절도할 해학이 등장한다. 김홍도신윤복의 풍속화 속에 나타난 여유로움, 중모리 중중모리로 이어지는 경쾌하고 다채로운 선율을 보여주는 판소리 등도 해학과 여유가 넘쳐 난다.
웃음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는 결연한 의지로 비극적인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한을 생의 덫으로 삼지 않는 숭고함이 잘 나타나 있다.
한은 한으로 받아 들일 때 한이 된다. 한의 늪에 파묻혀 자승자박 할건 지 한의 실타래를 풀고 밝은 내일로 승천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사는 모양새가 엇비슷해도 한을 곱씹으며 사는 사람과 극복한 삶은 천국과 지옥처럼 질이 다르다. 눈 감고 편안히 죽기 위해서라도 한의 무덤을 파지 않는 수 밖에 없다.
한은 정(情)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주지 않았다면, 가슴에 깊이 새기지 않았다면 애통해 할 것도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한은 연민이고 집착이다. 정을 다스리고 집착을 버리면 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적고 못 이룬 것이 많다고 한 많은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갖기 위해 한 치라도 더 쌓으려고 몸부림친 기록들이 한의 흔적으로 남는다. 생의 모질고 아픈 굴곡을 의연하게 견뎌 낸 사람들에게 한 많은 인생을 살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없이 인생을 잘 살았기 때문이다.
고향산천 등지고 그리운 사람 곁을 떠나 이민 가방 속에 시름을 묻으며 사는 것은 어쩌면 한을 가슴에 묻는 작업일 지 모른다. 못 배우고 출세 못한 것, 자식 공부 못 시킨 것, 돈 못 번 것 등등을 돌아보면 사는 것이 한을 맺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의 아픈 가시밭길을 맨발로 헤쳐 나가도 웃음으로, 작은 미소로 유연하게 대처하면 물레에 실을 잣듯 한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을 털어내면 대나무 마디처럼 굳어진 생의 굴곡에서 푸른 새순 피워 낼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2.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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