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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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 East Meet West

봄에게 나를 보낸다

 

 

 

 

 

 

 

 

'White and Magenta Orchid'
By: Brian Davis


가슴이 뛴다. 봄 꽃들이 눈이 아프도록 진하게 계절을 물들인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화가의 화법과 필법을 동원해 가장 질이 좋은 물감을 사용해도 자연이 그려 내는 이 봄의 아름다움을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르노아르는 “나는 그림 속 신체를 꼬집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누드를 완성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실제로 1888년에 그린 ‘목욕하는 소녀’의 탐스러운 몸매는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풍만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살아 있는 여자의 나신이 그려 내는부드러운 곡선을 따라갈 수는 없다.
고흐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보리밭의 황홀한 붓놀림은 ‘무수한 꽃들로부터 채취돼 햇빛에 굳어진 꿀’과 같이 달콤하게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연금술적 황금빛이 뜨겁게 파도 친다 해도 아득한 눈물 속에 반짝이던 고향길 보리밭만큼 사무친 생명으로 가슴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
인간은 신이 창조하신 가장 멋진 걸작품이다. 흑암의 혼돈 속에 먼저 빛을 만든 하나님은 땅과 하늘, 바다를 창조하신다. 풀과 채소, 열매 맺는 나무들을 종류대로 만든 뒤 해와 달, 별들은 만드셨다. 새와 물고기 육축을 종류대로 만든 후 하루를 쉰 후에 인간을 창조하신다.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뒤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그 이름을 사람이라 했으니 창조 목적의 완성품으로 인간은 태어나게 된다. 인간이 땅과 하늘, 별과 태양, 자연과 만물보다 더 완전한 모습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어떤 위대한 그림도 자연보다 더 사실적이지 못하고 인간보다 더 완전할 수 없다.
화룡점정의 기법도 생명을 화폭에 담아내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 보다 더 반짝이게 그려 낼 수 없다.
한 인간의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담긴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봄바람을 타고 이 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들이 펼치는 사랑 바이러스로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우유배달을 하는 할아버지 만석은 눈 오는 날 새벽 파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할머니 이뿐이를 만나 가슴 설레는 사랑에 빠진다.
치매인 아내 순이를 보살피며 주차 관리일을 하는 할아버지 군봉의 정성이 아프지만 함박웃음처럼 찐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황혼길을 함께 가는 네 사람의 소소한 웃음과 순애보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 이랴!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적은 것을 알면 모든 것이 더 절실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사랑하는 사람의 눈 빛일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가장 멋진 단어는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중략) 끊임 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혹여나 당신도 이 셀레는 봄에 부대껴 꿈에라도 그리운 고향 땅을 헤매나 염려돼 이육사의 ‘광야’를 적어 보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광야에서 목놓아 울지 않을 작정입니다.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해 노래 부르지 않겠습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는 지구의 어느 곳이라도 고향 땅에 뿌릴 그 씨앗을 심을 수 있겠지요. 흐드러진 봄 꽃향기에 시름 묻고 봄에게 나를 보냅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봄을 당신께 보냅니다. 당신의 계절 속에 늘 봄 꽃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죽고 사랑으로 꽃 필 내일이 오늘 여기 이리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어요.

중앙일보 4.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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