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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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East Mee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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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한사발 나눠 먹을

'Simple Pleasure'
By: Hatfield

죽은 쒀서 남 는 것. 나눠 먹어야지 혼자 먹으면 맛없다. 진수성찬을 혼자 먹는 것보다 소반이라도 함께 먹는 게 훨씬 즐겁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가장 잘하는 일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다. 혼자 밥 해먹기 싫어 이것 저것 남은 음식 섞어 죽 끓여 혼자 먹으면 설움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나는 지금 남편과 거의 일 년을 생이별 중이다. 노환이신 시어머님 병구환 하러 남편은 샌프란시스코에 들락날락하다 병원 앞에 아파트를 얻어 산다.
아이들은 타지에서 대학 다니니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낮 동안은 잘 지내는 데 어둑어둑 해가 저물 때, 혼자 먹거리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만가지 상념이 떠 오른다. 누굴 사랑하는 첫 번째 증거는 같이 지내고 싶은 것이고, 두 번째는 맛난 음식을 보면 함께 나눠 먹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죽은 곡물 음식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다. 초기 농경시대에 우선 수확한 곡물을 끓여 죽을 쑤고 사냥한 육류나 산나물 등을 섞어 넣어 다양하게 활용했는데 한국 문헌에 수록돼 있는 죽만 해도 40가지에 달한다.
그냥 물만 넣은 흰죽, 우유를 넣은 타락죽, 잣깨호두대추황률 등을 넣은 열매죽, 청대콩팥녹두보리풋보리 등으로 쑨 죽, 생굴전복홍합조개 등을 넣은 어패류죽, 쇠고기에 홍합을 넣은 담채죽, 고기나 생선은 넣은 죽 등 종류가 무궁하다. 율무죽연뿌리죽마름죽칡죽마죽 등은 별미일 뿐 아니라 약 효과도 있다.
지금은 보양음식 별미음식으로 뜨지만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죽은 목숨을 연명하던 구황식품이다. 나의 외조부는 밥을 국에 말면 죽이 된다고 절대로 국에 밥을 말아 드시지 않으셨다. 가난한 농부였던 당신은 수 없는 보리고개를 넘긴 아픈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게다.
한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은 현지에서 뜨는 농담 한 두개는 배워서 온다. 명퇴한 남편 죽이는 우스개가 여전히 판치는 기세다. 내용인 즉 50대는 '밥 달라'고 했다가, 60대는 '어디 가느냐'고 묻다가, 70대는 '아침에 눈 떴다'고 아내에게 얻어 맞았다는 어이 없는 패러독스다. 세태를 풍자했다지만 씁쓸하기 그지 없다.
가장은 한 집의 지붕이다. 가족 형제 사회 국가가 잘 받들어줘야 지붕이 안 샌다. 지붕이 새면 결국은 집이 무너진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효자자식 기대하기 힘들듯 남편의 존재를 무시하고 애들이 효도하길 바라는 건 바보짓이다. 어머니가 존경하지 않으면 자식도 아버지를 무시하게 된다. 아버지를 얕보는 자식은 어머니도 무시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혼자 먹는 밥상은 외롭다. 둘이 같이 살아도, 군중 속에서 부대껴도 외로운 게 인생살이다. 여럿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한시적이고 스쳐가는 바람이라면 홀로 겪는 외로움은 골수에 사무친다.
가족이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동그라미다. 둥글게 손잡고 있는 한 원초적인 생의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다.
지난 달 시어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49재를 마치면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안해 줘도 불평하지 않을 생각을 한다. 얼마나 오래 버틸지(?) 모르지만.
이제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서로의 등받이 될 때가 됐다. 애들에게 '아버지'란 든든한 이름으로, 훌훌한 죽 한 사발 나눠 먹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

중앙일보 06.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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