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AIaEnA硤[좯AI]East Mee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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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 공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가설극장이다. 천막이 올라가고 확성기에서 애틋한 유행가가 울려퍼지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어린 애들은 돈 안내고 들어갔는데 나이 때문에 입장권을 놓고 자주 실갱이를 벌였다.
궁여지책으로 막대기 두개에 새끼줄을 묶어 머리가 닿지 않는 애들만 무료입장이 허락됐다. 나는 몸집이 작은 덕분에 동네 언니의 등에 업히거나 목을 웅크리면 나이가 꽤 들 때까지 공짜입장이 가능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광대에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던 셈이다. 미술 실기대회나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어머니는 "공부나 열심히 해라"하며 반기지 않으셨다.
어머니 쪽에서 보면 예술은 공부가 아닌 셈이다. 딸의 광대끼와 잡끼(?)를 눈치챈 어머니는 "판사나 의사 교수가 되던지 얌전히 공부해서 그런 사람에게 시집가라"고 타일렀다. 시골 농삿군이던 당신도 예술가가 되는 길은 '밥도 돈도 되지않는' 험난한 길임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어렵다. 칸트는 학문이 단순한 '앎' 즉 지식이라면 예술은 '앎'을 실제로 '실행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어도 실제로 도자기를 굽지 않으면 도예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구두쟁이가 먹고 살기 위해 구두를 만들면 '노동'이지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놀이'와 같다는 것이다. 칸트는 벌이 집을 짓는 것은 '본능에 의한 자동적 행위'지만 예술행위는 '의지적 행위'라고 구별하고 있다.
예술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 저지르는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들이다. 돈도 술도 되지 않는 노동에 몸과 영혼을 바치고 저하고 싶은 일에 목숨거는 사람들이다. '노동'이 '재물'이 되지 못하는 반경제원칙에 굴하지 않고 본능을 넘어 도달해야 할 그 무엇(실제로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을 향해 불철주야로 뛰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예술이 대중화되면서 밥벌이가 나아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는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동숭아트센터와 모아 사다리 이다 파임 파파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여섯개의 연극단체가 초대권을 뿌리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제 살 깍아먹기 식의 초대권 문화를 뿌리뽑겠다는 비장한 각오다. 초대권은 마켓팅 대체비용으로 광고사에서 발급했거나 원로나 실세들에게 제공되는 공짜티켓을 말한다. 돈 안들이고 즐기는 공짜표는 있지만 세상에 공짜로 되는 것은 없다.
시카고 거주 한인에 의해 제작된 미주 최초의 HD 장편영화 '선물'도 돈키호테식의 발상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작품이다. 청소년 마약문제를 감동적인 홈드라마로 다룬 이 영화를 일반 영화제작비의 밥값 수준인 25만 달러로 제작했다니 놀랍다. 이런 작품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입소문을 내주고 표를 사는 일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군가가 지불한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Somebody is paying for it.) 이 말처럼 예술은 공짜가 아니다.누군가가 피땀흘려 번 돈과 시간과 정열을 투자했기에 창작이 가능하다.
예술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자만이 즐길 수 있다. 그 자격증의 첫 관문이 '입장권' 구입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수 없지만 예술가는 빵이 필요하다. 예술은 사치가 아니다. 인생이 곧 예술이다. 예술없는 인생은 맛없다.
내가 낸 입장료가 예술가의 식탁에 빵과 포도주를 허락하고 인생이라는 빈 배를 황홀하게 장식한다.

중앙일보 200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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