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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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 East Meet West

사랑이 지나간 풍경

 

 

 

 

 

 

 


'Borderlands'
By: Vincent George


사랑은 향기다. 수억 만리 떨어져 있어도 맡을 수 있는 그리운 사람 냄새다.
사랑은 마음으로 찍은 사진, 추억의 창고 속에 숨겨둔 그 필름은 언제라도 재생이 가능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추억의 공책 속에 감춰둔 빛 바랜 편질 찾아내면 어제의 풍경 속으로 성큼 다가갈 수 있다.
힘든 오늘을 견디는 그대여. 사랑이 떠났다고 슬퍼하지 말기를.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 때문에 당신의 하루를 시름으로 채우지 말기를! 이룬 사랑보다 못 이룬 사랑이 천배 만배 더 영롱한 빛으로 떠오르는 것을. 소리 소문 없이 왔다 사라졌다 해도 험한 세월을 버틴 따스한 힘이 사랑이란 단어 속에 살아 있느니.
운명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 천년의 사랑이 정말 있기나 하는 건지. '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등으로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의식 있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소설가 양귀자는 '듣고자 하면 듣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 영혼과 당신의 영혼은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이어져 있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천년의 사랑' 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모진 사랑을 노래한다.
주인공인 성하상은 노루봉산장에서 미루라는 개와 5살 여자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아가는 산장 주인. 백화점 홍보실에서 일하던 스물 여섯살 오인희는 생후 2개월에 버려져 간신히 전문대학을 졸업한 고아원 출신. 김진우를 만나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배신당하고 버림을 받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천년의 사랑이 기다린다. 온 우주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성하상, 그녀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고 쇠약해진 몸을 돌봐주며 천년의 사랑을 일깨워준 남자.
두 달 남짓 그들은 못다한 천년의 사랑을 이루며 꿈결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인희는 아기를 낳다가 죽고 만다. 사랑이 운명이 되면 슬픈 결말에 이르는 것일까? 이 생에서 어긋나지 말라고, 이 생에서 어긋나면 안 된다고 버티던 그 간절한 소망을 비켜갈 수 없던 두 사람은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마침내 현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천년의 사랑' 은 명상과 가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다소 비현실적인 감이 있지만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 되기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비켜가고 어긋나고 스쳐 지나간다. 그 때 그 풍경 속에 서 있던 내 곁을 그대가 바람처럼 스쳐갔다 해도 내 가슴 속에 작은 꽃씨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첫사랑처럼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중략)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중략)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 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장석주의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에서-
사랑이 휘몰아친 풍경은 쓸쓸해도 아름답다. 비록 첫사랑의 기억이 뼈저리게 아프다 해도 사랑의 고통은 별빛처럼 찬란하다. 세월 속에 수채화처럼 빛이 바래지고 파스텔화 되어 가루로 흩어진다 해도, 추억 속 그 풍경을 거닐 수 있다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그리운 모든 것들이 추억 속에 흐려진다 해도 사랑한 기억만은 한 여름밤의 그리운 별자리 되어 천년의 꿈으로 빛나리라.

중앙일보 8.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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