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AIaEnA硤[좯AI]East Meet West
.
부모는 두번 탯줄을 자른다

'반 보야지' '어리바 어 다체' '자이젠' '사요나라' '굿바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다. 올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자녀들이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 부모곁을 떠난다. '잘 가거라 어려운 길 조심해 가거라.' 아이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부모의 작별 인사다.
이별의 내용은 집집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떠나보내는 부모 마음은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 보다 더 진하고 가슴아프다.
자동차에 간이 매트리스를 쑤셔넣고 멸치조림 고추장 볶음에 화장지까지 챙겨넣는 부모도 화장실 물틀어 놓고 울기는 마찬가지다. 빠듯한 이민생활에 먹고 살기 벅차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들에 가슴이 에인다. 잘해준 건 하나도 안 떠오르고 덜 먹이고 잘 입히지 못하고 공부 안한다고 구박했던 날들이 후회와 앙금이 되어 눈물로 방울져 내린다.
정성을 다해 키운 자녀들이 집을 떠나게 되면 부모들은 '빈집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에 시달리게 된다. 아침 저녁 얼굴맞대고 웃고 울며 깨물고 싶도록 예쁘고 때론 새까맣게 속태우던 새끼들이 떠난 집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하다. 남편과 자식에게 올인하고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다는 허탈감으로 중년기에 달한 한국 주부의 절반정도는 우울증을 앓는다. 목적상실에서 오는 심리적 위기감이 주된 이유다.
집 떠나는 자식으로 가슴 아픈 건 서양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다. 자동차의 꼬리를 지켜보며 눈물을 홀짝거리던 가족들은 자동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면 각자 계획을 세운다. 엄마는 재봉실을 새로 갖는 기대감에 아빠는 컴퓨터를 더 즐기는 일에 동생은 2층 화장실을 혼자 쓰는 기쁨에 젖는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서양인들의 삶의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굿' 인 굿바이('Good' in Good-bye)를 찾아내는 것은 빈집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다. '굿바이'의 참뜻을 새기고 새로운 삶에 도전할 것을 사회학자들은 권고한다.
자녀양육으로 소원해진 부부사이의 금실을 다지고 자기몫의 삶을 계획하는것도 좋다. 옛 친구를 만나 수다떨며 우정을 다시 새기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권장할 일이다.
부모 쪽에는 뼈아픈 이별이지만 자녀쪽에서 보면 새로운 도전이며 흥미진진한 새출발이다. '독립심을 가져라.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열심히 가르쳐놓고 막상 그렇게 행동하면 황당해하는 부모를 보고 아이들은 곤혹스러워 한다.
자녀를 '성인 대 성인(adult-to-adult)'으로 대하며 '부모와 자식'의 종속관계에서 '친구'사이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감찰자'에서 '인생의 동반자'나 '멘토'로 물러난다고 해서 부모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갖고 있는 자녀에겐 언제나 '등 기댈 수 있는 나무'로 남아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가 서툰 부모 이민생활에 찌든 가족을 남기고 가는 죄책감에 고민하는 아이들에겐 부모쪽에서 서로에게 감긴 밧줄을 풀어주는게 현명하다.
너무 많은 교훈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감정을 절제하고 의연한 자세로 한 인간의 새 출발을 지켜보아야 한다. 부정적인 말은 삼가고 함께한 시간들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를 알려주고 네가 있었기에 내 인생이 얼마나 달콤하고 향기로왔는지를 말해주는게 좋다.
잘 성장해 준 것에 감사하고 그들이 이룩할 미래의 성취에 기대감을 갖도록 격려해야한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손을 놓아도 페달을 잘 밟던 아이들이 대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스스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한다. 부모는 두번 탯줄을 잘라야 한다. 두번째는 가슴으로 연결된 줄을 끊는 것이라서 고통의 폭이 크다. 부모쪽에서 그 줄을 끊어주지 않으면 자녀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없다.
'새장에 가두지 않았으면 새는 결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다. 마음 속 새장의 문을 열고 하늘 끝까지 날려 보내야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유롭게 멀리 보내거라. 돌아오면 내 것이었고 돌아오지 않으면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떠나도 영원히 남는 게 자식이다.

중앙일보 2006.08.31

<< Previous...................................Archives...................................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