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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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 East Meet West

팍상한에선 폭포같은 사랑을.

 

 

 

 

 

 

 


'Night in Paradise'
By: Sabzi


바다가 보인다. 느긋이 창가에 앉아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본다. 물보라색 하늘은 별과 달을 가슴에 품고 바다 속으로 빠져든다.
수평선 끝은 하늘의 시작이다. 바다와 하늘은 원래 한 몸이었을까. 하나이면서 둘이 되길 갈망하는 사랑처럼 한 몸으로 두 머리를 가진 슬픈 짐승이었을까. 뭍에 맞닿아 대지의 손을 뿌리칠 수 없지만 바다는 하늘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네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했다. 오대양에서 참가한 경북 해외자문위원협의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가뿐한 마음으로 팍상한으로 가는 관광길에 오른다. 밥보다는 반찬이 더 다양하고 제사보다는 제삿밥에 눈독 들이는 건 당연지사. 회의 땐 제법 근엄하던 얼굴들이 탈바가지 바꿔 쓰고 '낄낄 깔깔' 희희낙락 하느라 정신 없다.
막타피오강 주변 선착장에서 플라스틱 비옷 입고 헬멧과 오랜지색 라이프 베스트로 중무장한 뒤 괴기하고 귀여운 몰골로 둘씩 짝지어 카누에 오르면 화성에서 온 연인들처럼 지구에서 벌어질 사랑놀음에 가슴이 설렌다.
카누 앞뒤 쪽에 노 저을 두 명의 사공이 달라붙는데 배의 안전을 위해 여자가 먼저 입장해 카누 중심의 손잡이를 잡으면 뒷사람이 앞사람의 허리를 꼭 껴안아야 된다는 이 고마운 주의 사항!
사랑에 골몰한 연인들, 혹은 음흉한(?) 남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으랴. 부부 동반한 사람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상태로 복귀하고 혼자 온 싱글들은 나름대로 짝짓기에 눈을 힐끗거린다.
선견지명과 미인계(?),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무예로 잘 닦아 건장해 보이는 중년 남자를 유인(?)하는데 성공. 임시직이지만 정경부인(?)이 아무에게나 몸을 맡길 수는 없는 터.
내 통나무 허리 잡은 뒤 충격 받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는 악성 소문 안 낸다는 약조를 받아냈는데 다음 기회 포착을 위해 S라인이라고 소문까지 내준다니 이 아니 좋을시고.
폭포로 가는 강가에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있다. 동심은 어느 나라 어딜 가도 즐겁다. 간만에 철부지가 되니 경이롭지 않는 게 없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물 위에 떠 있는 잎새 하나에도 새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진다.
처음엔 서서히 노를 젖던 사공들이 좁은 협곡으로 들어가면 노련한 기술과 몸놀림으로 신출 기묘한 재주를 선보인다. 곳곳에 크고 작은 암초가 있기 때문에 바위 틈을 비집고 통과하기 위해선 날 세게 발 뻗어 암초로부터 배를 밀어내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과 병풍처럼 둘러선 정글 속에 하늘 문이 열린 듯 자태를 드러내는 폭포의 절경! 목말랐던 인생이 폭포의 물줄기에 젖어 내린다. 폭포를 맞으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청춘 남녀들은 이 곳에서 그들의 만남이 영원한 동행이 되기를 소망한다.
꿈을 불태우는 연인들이여. 생의 모진 고비 돌아 혹시나 남아있을 청춘을 그리며 방황하는 그대여.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팍상한 폭포 아래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라. 이승에서 인연 맺기를 두려워 말기를!
한 번 묶은 매듭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섣불리 인연의 매듭 풀지 말고 다시 폭포 속으로 들어가 새롭게 맹세하라. 제 몸 부수며 장엄하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작은 풀 한 송이 사랑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리라.
배가 흔들리고 생의 곳곳에 암초가 도사린다 해도 부르튼 두 손 잡아줄 그대가 있다면 힘든 노 젓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중앙일보 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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