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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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East Mee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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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에 숨긴 비밀

'Tremolo Flutes'
By: Schluss

"대니 키가 너보다 크지?"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를 만난 아들에게 던진 황당한 내 질문이다. 걱정 마. 이젠 우리 둘이 비슷해졌어. 아들 대답에 귀가 번쩍 열린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아셨다면 벌떡 일어나셔서 손뼉 치실 만큼 굉장한 사건이다.
아들과 코흘리게 동무 대니얼은 하루 간격으로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대니얼 아버지는 한국 사람으론 키가 무척 컸다. 반면에 우리 집 반쪽은 키가 작은 편. 대니가 아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었다. 게다가 그 애 부모는 젊디 젊은 데 우리는 늦게 막둥이로 얻은 자식이라 밀리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옹알이, 기어 다니기, 잡고 일어서기, 이빨 나기, 걷기, 말하기 등등. 서너 달은 보통이고 여섯 달씩이나 뒤지는 판국이니 할머니의 손자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대니얼을 붙잡고 손자랑 뒤통수 맞대고 키 재는 것은 기본이고, 입 벌리게 해서 이빨 숫자 세고 손가락 길이까지 쟀으니 대니 또한 수난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부모의 유전자 결함과 늙어 얻은 자식이라 부실 하다는 것. 이 두 가지 결격 사유를 충족시키느라 '잘 먹이면 잘 큰다'는 믿음 하나로 할머니는 두 팔을 걷어 부치셨다. 밤낮 안 가리고 먹이셨는데, 할머니 정성과 사랑을 날름날름 받아먹은 애는 날로 자라 드디어 건장하고 키 큰 청년으로 성장했다.
아들의 애칭은 '똥강생이'다. 경상도 토박이신 할머니는 '똥강아지'를''똥강생이'로 부른다. 오빠 아들인 첫 손자를 '똥개'라 불렀으니 막내인 우리 아들은 자동으로 '똥강아지'가 됐다. 제 이름 댈 때도 "지는 똥강생이 임니더"라고 말할 정도다
'똥강아지'란 이름에는 걱정과 사랑이 담겨있다. 강아지는 개의 새끼를 이르지만, 욕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개새끼'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아기를 아가라고 부르지 않고 '강아지'로 부르는 건, 애들을 너무 예뻐하면 귀신들이 시샘하여 해코지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도 개똥이, 똥개, 똥강아지, 똥칠이, 똥구, 똥만이 등등 더럽고 천한 이름을 가진 애들이 여럿 있었다. 자식 다섯 나아 둘만 목숨 보존하고 청춘에 홀로 돼 남매를 키운 어머니에게는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여한이 없으셨을 것이다.
그냥 강아지가 아니고 똥강아지로 전락한 데는 어느 누구도 손대지 말라는 할머니의 주술이 담겨있다. 키가 크던 작든 뚱뚱하든 빼빼하든 예쁘건 못난이건 똑똑하건 말건, 강아지처럼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주면 부모 소원 한 가지는 들어 준 셈이다.
자식 키우는 데 왕도가 따로 없다. 엎어지고 깨지고 받히다 보면 자식보다 먼저 부모가 철든다. 어릴 적엔 윽박지르기라도 했지만 나이 들면 할 말 못할 말 고르느라 조마조마 눈치보기 여념 없다. 자식은 부모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존재, 어쩌다가 여쭤(?)보면 생뚱 맞은 대답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에는 원칙이 없다. 원리도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사랑은 그저 품어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 그 따뜻한 감촉과 사랑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을 갖게 한다. 언제나 내 편인 누군가가 든든히 받쳐주는 삶은 힘들어도 고달프지 않다. 자식의 삶에 내 삶을 대입시키면 모두가 불행하다. 자식은 자식의 삶으로 족하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 속으로 들어오지만 큰 그릇은 작은 그릇 속으로 못 들어간다.
부모가 큰 그릇이 돼 품어줘야 작은 그릇이 큰 그릇이 된다. 자식 키우는 일은 길 위에서 허둥거려도 포기하지 않는 대장정이다

중앙일보 09.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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