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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칼럼 [ 동서교차로 ]

슬퍼하지 마라


‘Joy of Blue' by Hessam

달력이 한 장 남았다 . 왠지 쓸슬하다 . 손가락으로 올해 남은 날들을 세 본다 . 무얼하며 일년을 이렇게 후다닥 보냈을까 . 크게 이룬 것 없으니 뉘우치고 후회 할 일도 없지만 연민은 쌓인다 . 세상에서 제일 맥 빠질 때는 스스로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겨질 때다 . 좀 덜 떨어져 보여도 잘난 체 하고 큰 소리 칠 때가 좋았다 .
세상 우습게 보고 기분 내키는대로 내 방식대로 행동 할 때가 편했다 .
부질없는 자기연민은 생을 갉아먹는다 . 삶을 무기력하게 하고 지치게 만든다 . 자기연민은 아프지만 꼭히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 스스로 초라하고 부족함을 깨달으면 작아지고 단단해진다 . 연민이 성찰이 되면 더 넓고 깊은 나를 만난다 .
올 추수감사절은 조촐하고 조용하게 보냈다 . 딸은 출산 , 아들은 결혼식과 아프리카 신혼여행으로 휴가일을 초과해서 각자 사는 곳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
여행 다녀와 피곤한 터라 속으론 쾌재를 불렀는데 내 계산이 빗나갔다 . 쓸쓸해 보일까봐 지지고 굽고 상을 차렸는데도 먹을 사람이 없는 식탁은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 잔치집과 초상집은 역시 분벼야 제 격이다 . 애들 웃음소리 , 깨 볶는 소리 , 여기저기 석류알 처럼 터져 나오는 달고 새큼한 단어들이 사라진 밥상은 먹거리가 풍성해도 빛좋은 개살구 마냥 초라하기만 했다 .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픈 날엔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시는 어릴적에 이발소나 미장원 , 대청마루에 흔히 걸려 있었다 . 삶이 왜 속임수를 쓰는지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슬퍼해야 하는지를 몰랐지만 내가 완벽하게 외운 첫 번째 시다 .
젊은 시절 고독한 유배생활로 불행했던 푸슈킨은 러시아 역사와 민중의 생활을 깊히 통찰하며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긍정을 자신의 문학적 테마로 삼게 됐다 . 그의 시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삶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인간 본연의 소중한 삶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 낭만적이고 감상적이지만 삶의 고달픔을 간명하고 아름답게 노래해 세기를 초월해 애송된다 .
나는 이제 이 시를 외우지 않고 가슴으로 읽는다 . 세상에서 제일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 아군도 적군도 심판관도 ' 나 ' 이기 때문이다 . 허접한 자기연민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달콤했던 어제를 알사탕 처럼 입안에 굴리며 더 아름답고 착한 언어로 남은 시간을 살뜰하게 적을 수 있기를 간구한다 .
허전하면 체우고 , 빈방은 청소하고 , 슬프면 더 많이 웃고 , 아플 때는 수다 떨고 , 그래도 외로우면 하늘 보고 멍 때리고 , 헛 웃음은 허공에 날리고 . 남은 시간 세지 말고 , 작은 일에 호들갑 떨지말고 , 장례식장 가기 싫어 핑게 대지 말고 , 귀찮다고 초대장 와도 안 가는 바보짓 하지 말고 , 없는 것은 없다 말하고 , 가진 것 너무 챙기지 말고 , 맛난 것은 나눠 먹고 , 좋은 곳엔 함께 가고 , 맘에 드는 사람 동무 하자 손 내밀고 , 등 돌리는 사람 구태여 잡지말고 , 떠나갈 사람은 낙엽처럼 계절에 실려보내고 , 미운 사람 맛 없는 떡 한개 집어주고 잊어버리고 , 겨울비에 젖어 꽁꽁 마음 언 사람 화롯불 지펴 데워주고 , 아파하는 사람에겐 심장 빌려주고 ,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면 후회없이 사랑하고… .
다정한 눈빛으로 내게 말할 시간이 됐다 . 슬퍼하지 마라 . 견딜 수 없는 슬픔은 없나니 . 살면 살아지는 것이라고 . 몸 담은 이 곳이 살 만한 곳이라고 .

미주 중앙일보 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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