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칼럼[동서교차로]East Meet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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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공식

Endless Dance II
By Anna Razumovskaya

요즘같은 땐 지갑을 쥔 사람의 수난 시대다. 크리스마스가 코 앞인데 두 손 놓고 달력만 바라볼 수 없어 쇼핑을 했다. 수표 책의 잔고가 달랑달랑하니 사도 걱정, 안 사도 걱정이다. 어려운 한 해였으니 보통 때 보다 감사를 드려야 할 곳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47560;음 가는 곳에 물질이 간다?#51648;만 마음으로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곳은 눈 딱 감기로 했다.
경제 원칙에 입각해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발 품을 파는 수 밖에 없다. 연말이면 매년 홍역치르듯 내가 선물 때문에 동분서주하는 데 비해 내 반 쪽은 선물 하나 안 챙기고도 한 해를 잘만 보낸다. '시작을 안하면 끝까지 안해도 된다'는 게 선물 안주기 작정의 골격이다. 데이트 때 디자인까지 챙기며 내 옷을 골라주던 남편은 결혼 후 함께 쇼핑을 간 적이 거의 없다. 남편의 정성(?)이 담긴 그 옷은 사이즈가 작아 못 입지만 천년 기념물(?)로 남기려고 옷장에 보관 중이다.
쇼핑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차원이 다른 동물이다. 남자는 필요로 하는 1달러 짜리 물건을 2달러에 사고 여자는 필요하지 않은 2달러 짜리를 1달러에 산다. 남자는 필요한 것만 사고 여자는 세일이면 지금 당장 필요 없어도 비상시를 생각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여유를 부린다. 남자는 지불한 돈을 계산하지만 여자는 절약한 돈을 센다. 맘에 안들면 남자는 안사지만 여자는 맘에 안 들어도 싸면 사 둔다. 남자는 제 것 사는 것도 귀찮아 하지만 여자는 사돈 팔촌까지 챙기며 흐뭇해 한다.
남자가 여자와 쇼핑 갈 때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죽지 못해 코 끌려 가 배려와 인내심을 시험 당한다. 여자는 엄두도 못내는 가격표를 보며 호들갑을 떨지만 남자는 무덤덤 쪽 팔리는 기분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남자는 쇼핑을 업무로 생각해 빨리 처리하고 집으로 가고 싶어 한다. 여자에게 쇼핑은 즐기는 놀이 문화다. 돈 안주고 들어가도 테마파크 가서 중도 하차하는 사람은 없다. 문닫을 때까지 돌아 다녀야 본전 뽑은 기분으로 직성이 풀린다. 남자는 결과를 중요시 하고 여자는 과정을 즐긴다. 쇼핑에 한해 여자와 남자는 따로 국밥이다. 기분 좋게 시작했다 다투고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요의 법칙에 의하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 가격과 수요는 반비례 한다. 싸면 잘 팔린다는 수요의 법칙에도 예외는 있다. 어느 고급 백화점에서 50 만원으로 가격표를 붙였더니 잘 안 팔리던 옷이 100 만원으로 올리니 불티나게 잘 팔렸다. 수요의 예외적 현상인 베블린 (Veblen Effect)효과 때문이다. 베블린 효과는 과시 욕구에서 일어난다. 명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외면 당하는 속물 효과(Snob Effect)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 부류에 끼고 싶다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에 집착하는 층이 있는 한 수요 공급의 법칙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돌고 도는 게 돈이고 인생은 시소 게임처럼 내려가면 올라간다. 다이어트 한다고 메뉴도 못 보란 법 없다. 돈 안들고 눈높이 교정하고 즐기는 게 아이쇼핑이다. 이 참에 쫌팽이 불명예도 벗을 겸 먼저 쇼핑가자고 제안해서 여자를 혼절시키는 것도 불경기에 살아 남는 방편일 것이다. 여자는 선물의 내용보다 선물을 준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즐기고 사랑한다.

중앙일보 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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