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KEE HEE
AIaEnA硤[좯AI]East Meet West
.
세월이여 안녕.

'Intergrated Wonder'
By Cecil K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간 세월이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다. 세월이 가면 불같이 뜨거웠던 첫사랑도 흐릿한 옛사랑의 추억이 되고 비껴가지 못한 세월 속에 남아 뻐국새의 한맺힌 울음이 되기도 한다.
해와 달을 단위로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세월(歲月)이다. 세(歲)자의 '걸음 보(步)'는 순환하는 한 해라는 뜻으로 걸어 온 발자취가 쌓여 세월이라는 시간을 만들게 된다.
우주나 천체, 물질과 에너지가 정지되어 있어도 에너지와 물적 존재라는 무엇이 있다면 세월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반면에 시간은 물체나 물질이 에너지 활동 으로 이동하는 것을 수학적인 공식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든 지표다.
지구의 이동을 중심으로 세월에 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시간인 셈이다. 천체의 이동이나 변화에 따라 시간의 단위는 바꿀 수 있으나 세월은 절대적이라서 인위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다. '나'라는 개체가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주가 존재하는 한 세월은 지속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세월 속에서 삭제 내지 상실되는 게 죽음일런지 모른다.
'왕이불래자연야(往而不來者年也)'라 했던가. 어릴 적 소꼽친구와 함께 발을 담궜던 그 냇물은 세월 속에 영원히 흘러간 물이다. 세월이 '닳아서 없어지는 것(消魔 歲月)'이 아니라 하릴없이 허송세월하다가 시간 속에 삶을 묻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세월이 가면/가슴이 터질듯한/그리운 마음이야/잊는다해도/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은/잊지말고 기억해줘요.'-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중에서-
사르비아 처럼 빨갛게 타오르던 정열도 봉숭아 마냥 터질듯한 그리움도 시간이 흘러가면 아득한 세월의 낭떠러지로 사라져간다.
감꽃 목걸이 목에 걸고 망아지처럼 뛰놀던 아련한 유년의 기억이여. 뭉게구름 으로 피어오르는 꿈의 자락들이여. 눈물과 혼돈 속에서 방황하던 시간이여.
한 여름밤의 소나기로 가슴때리던 찬란한 청춘이여. 절망과 아픔으로 방황하던 장년의 시린 상처들이여. 세월의 아늑한 품 속으로 날개를 접어라. 시간이 세월 속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그 아픈 삶의 쇠사슬을 풀 수 있었으리. 폭풍우 몰아치는 그 힘든 겨울 밤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으리.
찰라일망정 세월 속에 허락된 그 만남의 시간이 없었다면 뜨거운 모닝 커피 삼키며 마지막 인사말을 주고 받을 수 없었으리. 빛나는 이별의 아침도 죽음보다 진한 입맞춤도 없었으리라. 작별의 손수권을 접으며 다시 차오르는 희망으로 가슴이 떨리는 시간. 때묻은 세월의 칸 칸에 어제를 담아 강물 속에 나의 시간을 떠나보낸다. 눈물과 아픔 상처로 얼룩진 어제를 세월 속에 담아 보낸다.
슬픔이여 안녕. 촛불을 켜고 떠나는 너의 옷자락에 보고싶은 얼굴들에게 보낼 그리운 인사말을 적는다.
뒤돌아보지 말고 잘 가거라. 눈물 보이지 않고 새 날을 시작하리라. 희망의 몸짓으로 내일로 미래로 다가가리라.
세월이여 안녕. 사랑이고 아픔이며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했던 날들이여. 네 속에 나를 담아 보낸다.

중앙일보 2007.12.27

<< Previous...................................Archives...................................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