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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 인생역경 딛고 미국 상류층 사회 사업가로 성공한 이기희

성공한 사업가 이기희 씨는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장애아로 태어난 딸과 암으로 죽은 남편,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중국인 남편…. 그리고 지금 그녀는 성공한 여자, 행복한 여자이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만든 것일까?

이기희 씨만큼 파란만장한 여자도 드물다.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 장교와 결혼 후 미국에서 다운증후군 딸을 낳고, 암으로 남편을 잃고, 또 중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더 낳고…. 미술을 공부해 ‘윈드 갤러리’를 통해 미국 상류층 사회의 사업가로 우뚝 선 지금, 그녀는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지난 일들을 반추해 보고 있다.

그녀의 첫 단추는 문학을 지망하는 여대생 이기희로 시작된다. 대구 계명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만 하더라도 시인 김춘수로부터 ‘대구에서 노천명 같은 여류시인이 나올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촉망받는 문학도였다. 그런 그녀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것은 미국문화원 직원의 한국어 교사로 일하면서였다. 학생이었던 미국문화원 직원이 독립기념일 파티에 이씨를 초청했고 그 자리에서 첫 번째 남편인 제임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파티에서 만난 제임스는 절 보고 첫눈에 반했다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교문 앞에서 저를 기다렸어요. 우리는 딱히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지도 않았지만 제 눈길이 멈추는 곳에 늘 그가 있었어요.”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미국으로 건너가 첫딸을 낳았다. 그런데 딸은 다운증후군이라는 병을 갖고 태어난 정신박약아였다. 또 태어날 때 십이지장이 막힌 상태여서 수술을 해서 뚫어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으며 선천성 심장병도 앓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운명의 장난이 실제로 그녀에게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에 수술을 거듭했지만 딸은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같이 위태로웠다. 열두 시간씩 젖병을 물려도 우유 한 병을 다 못 먹는 아이, 체중이 늘지 않아 수술조차 불가능한 아이, 영영 자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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