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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사람] 재미 문화사업가 이기희

소설같은 삶이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살다보면 평범하 기 짝이 없는 내 삶도 가끔씩은 소설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 희씨(49)를 보면, 또 그가 최근 펴낸 자전적 소설 '찔레꽃'을 읽으면 함부 로 "내 삶도 소설"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미군장교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난 지 만 25년. 스물둘의 처녀는 갤러리 두 개와 예술센터를 가진 성공 한 중년 문화사업가가 되어 자신의 소설책 한권을 들고 돌아왔다. '찔레꽃 '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노모의 팔순헌정식을 위해 이씨가 지난 20일 대구 를 찾았다.

'찔레꽃'은 이씨 자신의 이야기다. 그래서 소설적 허구보다는 사실이 더 많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자식을 위해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 현풍댁 과 범이 어미 그리고 '구들목 쪽으로 옹기종기 발을 모은 채 부챗살처럼 누워 제각각 자기 키에 맞는 내일을 꿈꾸던 아비잃은 목숨들, 옥이 언니와 범이 오빠 그리고 환이 오빠와 나'(1권15쪽)의 이야기다.

"이 책은 한때는 문학에 목숨을 걸고 싶었던 지난날들에게 지키는 내 약 속이며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던 이 땅에 대한 송별인사"라고 말하는 이씨 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아침이면 소리없이 사라지는 자음과 모음을 붙잡고 꿈 속에서도 유년의 기억이 새겨진 이름을 적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때 그는 시인의 꿈을 키우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경북여고를 졸업 하고 계명대 국문과를 나온 그는 대학시절 고 김원도(소설가 김원일.김원 우 형제의 동생).이창동씨(현 영화감독) 등과 함께 '주변문학' 동인을 결 성해 문학활동을 했다. 2학년 때는 '가을이 지나간 풍경' '파도' 등의 시 로 시문학지에 추천되어 등단하기도 했다. 제임스 버스월드 대령을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는 더이상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다. 주위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5년만에 남편이 식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 서른. 남편 없이 살아가기에 그는 너무 젊었 고 미국은 여전히 낯설었다. 다운증후군의 장애아인 다섯살짜리 딸과 함께 남겨진 미국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불행한 운명도 유전되는 것 일까. 두 살에 아버지를 잃은 자신이 아니던가.

미친듯이 한국으로의 귀국을 서둘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딸이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기에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딸의 특수교육을 위해 라이트주립대학에서 예술교 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싱클레어대학에서 응용미술학을, 신시내티대학에 서 순수미술 및 조각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 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했고 사업가적 수 예술가적 감각을 살려 96년 '제이드 갤러리'를 열었다. 2년 뒤에는 현대미 술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윈드갤러리'를 오픈했고, 지난 6월에는 전시장 과 종합예술교육을 겸한 복합문화공간인 '센터빌 창작예술센터'를 개관했 다. 3주간 열렸던 아트센터 개관행사는 큰 화제를 불렀으며, 지역사회 문 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센터빌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동양여인이 미국 상류사회에서 성공하여 인정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그는 "남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배를 들여가며 노력했다"고 털 어놨다. "다른 짓을 하면서 작가라 불리는 것은 기만이다"는 그는 "나는 소설가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업가일 뿐"이라고 말한다.

'내 작은 몸뚱어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목숨 붙이고 살아왔 는지 그 근원을 찾아보겠다는 허허로운 여행(2권301쪽)'으로 시작한 '찔레 꽃'은 앞으로 미국땅에서 사업가로서 성공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기쁨과 슬 픔으로 이어져 올해 안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지구의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사는 곳이면 눈물과 그리움은 있을 것이고 이제 그 눈물이 떨어지는 땅에서 새로운 뿌리의 근원이 되길 바랍니다. 뿌 리는 지구의 어디에서든지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2권302쪽)"


이은경 기자 2002-08-01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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