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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軍을 사랑한 문학지망생 “내 인생 비난받아야 하나요”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4-11-14 18:10:00 기사수정 2009-10-03 15:41:14











이기희씨. 미국에서 레스토랑 체인 ‘제이드가든’ 등 여러 가지 사업과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나는 그냥 사장이라고 불리기보다는 예술 사업가로, 사업가보다는 작가나 화가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사진제공: 휴먼 앤 북스


“첫눈에 반한 미군 사령관의 사랑을 믿고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것이 죄가 되는가요?” 미국 오하이오주 테이튼에서 화랑 ‘윈드 갤러리’를 운영 중인 재미교포 이기희씨(51)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펴낸 자전 에세이집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휴먼 앤 북스)에서 “중진 소설가 이문열씨와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작품들에서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가 그늘진 채 묘사돼 오랫동안 상처를 다스리느라 애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어려서 집안이 기울자 고학하다시피 공부해 대구 계명대 국문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주변문학’ 동인을 결성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동아리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 전 장관과 중진 소설가 김원일씨의 동생 김원도씨(작고) 등과 함께 ‘문청(문학청년) 열기’를 지피며 교분을 다졌다.

그러던 중 이씨는 대학 학장의 주선으로 주한 미국공보원 간부 부인의 한국어 개인교사가 되고, 이를 계기로 대학 4학년 때 미국 독립기념일 파티에 초대됐다. 여기서 이씨는 열여덟 살 연상의 미군 보급사령관 제임스 버드월스 대령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으며, 졸업 후 1977년 그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그 시절 주변에선 나를 ‘(결혼으로) 부르주아가 되려고 갈망하는 배신자’라고 보았다”며 “나에게 각별한 정을 보이던 김원도씨의 지병이 깊어진 것도 이 같은 비난에 명분을 실어주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창동씨의 데뷔 작품인 단편소설 ‘전리’에는 가난한 시인의 사랑을 저버리고 미군 장교와 결혼한 여자에게 죽은 친구 대신 복수의 칼날을 세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했다.

또한 이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건너 들었던 이문열씨도 두 작품에서 자신을 부정적인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문열씨의 ‘변경’에 문학 지망생이었던 애인 명훈을 버리고 ‘점령군 장교’와 결혼해 조국을 등지는 경애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또 다른 그의 작품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도 첫 사랑 한국 남자를 배반하고 백인과 사랑 놀음을 하던 여주인공이 총에 맞아 숨지죠. 여주인공과 유럽으로 정사 여행을 떠난 부동산업자의 이름이 버드월스이고, 내 미국 이름 또한 버드월스예요.”

그러나 이에 대해 이문열씨는 냉담하게 말했다. “두 작품 모두 이기희씨와는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그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 ‘추락…’에 나오는 부동산업자는 버드월스가 아니고 캐빈 머레이다. 내가 ‘변경’에 버터워스라는 인물을 다룬 적은 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이기희씨가 부주의한 착각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변경’의 명훈 이야기는 1958년을 다루고 있다. 이기희씨가 결혼하기 20년 전이 배경이고 (이씨가 말하는 것과)많은 것이 다르다.이런데도 그가 왜 내 작품의 모델이라고 자처하고 공개하는지 모르겠다.”

한편 이씨는 “남편 버드월스가 1983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내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집안 살림과 저금 등을 세세하게 정리한 노트를 건네주며 마지막 날까지 도리어 나를 돌봐줬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이후 중국계 미국인과 재혼했으며 1996년 미국에서 기희미술학교를 세워 운영 중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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